비숍의 취재기는 기자와 작가의 능력을 겸비한 결과물이다. 100년 전의 한 국인 모습을 이 책만큼 사실적으로, 또 사례 중심으로 생생하게 전해 주는 책은 달리 없다.
「艱難(간난)에 견딜 줄 아는 강인하고 공손한 민족이 살고 있고, 거지 같 은 극빈계층도 없으며 풍요한 연안 자원도 있는」 한국의 잠재력이 관공서 의 부패와 부정으로 해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데 대해서 비숍은 안타까워 한다.
그 속에서 나는 한국의 첫인상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한국의 바다에 땅에 가난에 견딜 수 있는 국민 속에 있음을 보았다.
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단지 두 계급, 즉 약탈자와 피약탈자로 구성되어 있다.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 계급, 그리고 인구의 나머지 5분의 4인 문자 그대로의 「하층민」인 평민계급이 그것이다. 후자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시베리아 韓人들의 의연함
비숍은 한국인들이 이주해 가서 살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遠東(원동 )지방의 한국인 정착촌도 방문했다.
이곳의 한국 남자들에게 는 고국의 남자들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풀 죽은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토착 한국인들의 특징인 의심과 나태한 자부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노예근성이 주체성과 독립심, 아시아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영국인의 것에 가까운 터프한 남자다움으로 변했다. 활발한 움직임이 우쭐대는 양반의 거만함과 농부의 낙담한 빈둥거림을 대체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고 만다린이나 양반의 착취는 없었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은 번창하는 富農(부농)이 되었고 근면하고 훌륭한 행실 을 하고 우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로 변해갔다. 이들 역시 한국에 있었으면 똑같이 근면하지 않고 절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했다 .
이들은 대부분 기근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배고픈 난민들에 불과했었다. 이들의 번영과 보편적인 행동은 한국에 남아 있는 민중들이 정직한 정부 밑 에서 그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천천히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에게 주었다>
조선은 거대한 빨래터
서양인의 눈에 비친 100년전 조선의 모습은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기록 곳곳에는 그들이 조선에서 느낀 악취, 더러움, 혐오스러움이 매우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들은 조선인이 입고 다니는 순백의 옷이 더더욱 신기했던 것이다.
서울의 성벽 안쪽을 묘사하는 일은 어쩐지 피하고 싶다. 나는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고, 사오싱의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냄새나는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거대 도시이자 수도로서 서울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1894년)
한국 사람들은 과음하는 관습이 유난스러워서 주정뱅이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 내가 한강을 여행하며 관찰한 결과로는 취해버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품위를 떨어 뜨리는 일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곡주를 마신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짐승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1897 )